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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1.13, 베를린

 

여름 어느 날, 우연히 만난 공터로 향하는 길은 모든 곳으로부터 열려 있다. 나는 주거지를 옮길 때마다 내가 살아가게 되는 주변의 풍경 속에서 공터를 먼저 찾기 시작한다. 아마도 풍경으로써 불분명한 정체와 어떤 질서로부터 방치된 곳에 대한 단순한 궁금증 때문이다. 가을이 깊어갈수록 하늘은 길게 어두워지고 비는 많이 내린다.
나는 공터를 자주 돌아다니면서 본 그 안의 여러 장면들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것은 넓은 터가 보이고 어수선한 자연물이 근방에 널려 있으며 그 너머에는 흔하게 보이는 주택이 벽처럼 쳐져 있는 풍경이다. 또는 아주 작은 홀이나 잡풀이 무성한 사이로 버려진 어떤 기물 들이 흩어져 있다. 며칠 동안 한 풍경을 그려냈다. 그림을 그린 뒤에 캔버스를 들고 다시 원래의 풍경의 자리로 돌아 온다. 공터의 가장자리에서 나는 주변의 기물들(나무 작대기, 돌맹이, 철사...)을 주워 그림을 지면 위에 아슬아슬 세워 놓고 캔버스 너머의 풍경과 그림을 겹쳐보기 시작한다. 어느 정도 풍경의 자리에 그림은 적당한 접점을 찾은 후 풍경과 그림이 겹쳐진 상태에서 촬영된다. 촬영은 매번 어렵다. 주변의 누군가의 도움 없이 인위적 장치로 정교하게 세워서는 안되는 단순하지만 까다로운 작업이다. 그래서 매번 불안 불안하게 서있다가 느린 바람에도 쓰러지기를 반복한다. 더군다나 공터는 주변이 탁 틔어 있어서 사방에서 바람이 거세게 지나간다. 그래서 촬영은 매번 실패다. 결국, 수십 번의 시도 끝에 촬영은 무사히 마칠 수 있게 된다. 이 후 오로지 이 공터안에서 머물며 바라보는 풍경의 분할된 다수의 장면화 된 습작 들은 모두 같은 과정을 거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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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이 되었던 풍경으로 다시 돌아가 그 풍경의 일부가 되는 과정은 그 장소에 주목하게 한다. 그림 그 자체 안에서 시선이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장소로 확장 되며 그 장소를 흔든다. 풍경의 일부 부조화스런 레이어가 되어 임시로 자리 하되, 더 이상의 의미를 보태지 않는 것, 그것은 단편적 일지라도 그 사이를 온전히 유지하며 관계 하려는 소박한 시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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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공터에서 찾은 장면들은 매우 다양하다. 누군가가 버린 물건, 쓰레기, 훼손된 자연물, 방치된 자연물들, 사라진 흔적들, 현재는 무용한 이름없는 철탑들까지 불분명한 가치의 장면들이 혼재해 있다. 공터 자체는 도심지 사이에 속해 있으며 주변은 매우 정교하고 엄밀한 통제 속에 있다. 그러나 공터는 다른 어떤 풍경들로부터 방치되어 있지만 소외된 자리는 아니다. 그곳은 담장 너머 다른 세계다. 나는 이런 방치된 장소를 주목한다. 여기서 발견되는 자연물은 매우 인상적으로 정교하다. 심지어 오래된 기물들, 쓰레기들 조차도 방치된 이후 그것은 또 하나의 자연물처럼 변화한다. 원래의 딱딱한 기물들은 여기서 방치의 시간을 견딘 후 유연한 자연물로 변한다. 내가 지면에 캔버스를 세우려 할 때 힘겹게 주변의 사물을 사용하는 것은 이런 무가치한 대상으로 변한 자연물을 빌려 나 자신과 풍경 사이의 무너진 균형을 조금이나마 맞추기 위한 과정이다.

안경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