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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란한 밤

피비갤러리



피비갤러리는 2019년 5월 9일부터 6월 22일까지 안경수 작가의 개인전 <요란한 밤 A Loud Night>을 개최한다. 우리가 잘 보지 못하는 것들 혹은 보려고 하지 않는 것들에 주목해온 안경수는 최근 을지로 상업화랑의 전시에서 도시의 번화가를 우회하며 목격한 광경을 보여준 바 있다. 이번 피비갤러리의 전시에서 안경수는 한층 세밀해진 주제와 시각으로 또 다른 전환점을 향한 시도를 보여준다.


안경수에게 회화라는 장르는 작가의 의도를 가장 효과적으로 드러낼 수 있는 장치이자, 또한 회화 자체의 가능성을 탐색하는 기제로 작동한다. 그의 최신작들은 자신이 집요하게 매달려온 페인팅의 영역을 한층 확장하고 있음을 말하고 있다. 지금껏 그의 회화가 ‘막과 풍경’의 사이를 오가며 자신의 주변을 관찰하고 기록해왔다면 이번 작업들은 좀 더 그리기 자체의 행위와 화면에 대한 오랜 응시 그리고 캔버스를 대하는 자신의 태도에 더욱 집중하는 듯한 모습을 보여준다.


안경수가 작업을 대하는 시선과 태도는 2012년의 대안공간꿀풀에서의 전시 <바리케이드 Barricade>를 경계로 그 이전과는 분명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2006년의 첫 개인전 이후 보여지는 안경수의 초기 작업은 그가 전공한 동양화의 성질이 묻어나는 드로잉 작품들이 주를 이룬다. 캔버스 작업이 시작된 2009년 이후부터는 빠르게 마르고 덧대기 쉬운 아크릴의 특성을 활용한 단순한 색과 비물질적인 선들로 이루어진 회화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 시기에 종이와 캔버스를 오가는 반복 속에서 동양화적인 속성과 오일페인팅의 무게감을 아크릴을 통해 구현하는 방법을 체득하게 되었다. 아크릴 위에 덧바르고 말려서 또다시 덧칠하는 과정은 이후 작업에서 나타나게 된 “레이어(layer)”에 대한 노하우를 가져다 주었고 그의 화면은 수 겹의 층과 막을 갖게 되었으리라 짐작된다. 이어지는 작업들에서 자본주의와 재개발, 그것이 야기하는 인공적인 풍경에 대해 비판적인 시선을 이어갔던 안경수는 <바리케이드> 전시를 계기로 좀 더 일상적인 광경과 내면의 리얼리티로 관심을 옮겨 간다. 자신의 삶을 구성해온 겹겹의 기억과 경험을 그동안 수없이 보아온 사물들에 관계시키면서 작품은 그 배면의 흐릿한 감정을 드러내기 시작하였다.


또 다른 전시 <막 Membrane> (2016, 조선갤러리) 에서는 본인의 오롯한 감각으로 주변세계에 대한 관찰을 더욱 내밀화하는데 겹겹히 포개어 진 가림막이나 온갖 정물과 지물들 심지어 쓰레기들이 뒤섞여 복잡한 구성으로 나타나기도 하였다. 그는 또한 자신의 그림을 하나의 막처럼 인식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러한 관점은 그가 회화 작업 후 그것을 그린 장소에 작품을 가져다 두고 사진을 찍는 행위에서 나타난다. 이 같은 태도와 방식으로 안경수는 대부도(2016~2017, 경기창작센터 레지던시 프로그램)에 머물며 그곳에서 목격한 간척지와 갯벌과 썰물과 방조제를 그렸다.


피비갤러리의 <요란한 밤 A Loud Night> 전시에서는 안경수의 최근 작업에서 나타나고 있는 작품의 변화 양상에 주목한다. “요란한 밤 A Loud Night”은 안경수가 2017년에 그린 작품의 제목이기도 하다. ‘밤’이 연상시키는 시각적 이미지에 모순적으로 덧입혀진 ‘요란한’ 이라는 청각적 감각의 작용은 안경수가 이번 전시에서 보여주고자 하는 바를 암시한다.


안경수는 도시의 공간 중에서도 잉여의 존재, 사람이 부재하는 장소 혹은 도시를 지탱하기 위해 생성된 외곽지역 공장과 컨테이너 박스 같은 구조물들을 탐사하고 이를 캔버스로 불러낸다. 그의 화면에서 여전히 등장하는 것은 주변에서 흔히 지나치는 풍경과 사물들이지만 보는 이가 자신의 일상적 삶과 연결지어 생각할 수 있는 부분은 상당히 제한적이고 주요한 디테일은 어딘지 모르게 현실의 맥락에서 벗어나 있다. 안경수가 보여주는 풍경은 익숙하지만 자연스러운 모습은 아니기 때문이다. 일상의 도시풍경과 버려지거나 사라진 주거지, 그리고 재개발로 곧 생겨날 건물들 사이에서 시간은 정지된다. 이 장소들에서 인간은 존재하지도 존재할 필요도 없다. 개인이 없고 그러므로 타인이 존재하지 않으며, 사물들은 역설적 의미에서 부재한다. 그저 빈 공간의 다른 장면들과 무언가 존재했던 흔적만이 있을 뿐이다.


안경수의 최근 작품에서는 폐허와 빛, 그 사이에서 발생하는 긴장 관계를 확인할 수 있다. 특히 낮의 시간에서 밤의 시간으로 건너가는 그 어느 지점에서 발생하는 어슴푸레하지만 분명한 빛을 적극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것을 눈치챌 수 있다. 공터나 폐허와 같은 어울리지 않는 곳에서 빛이 홀로 존재하는 모호함이야말로 기이한 낯설음을 불러일으키는 요소이기도 하다. 석양과 노을 외에도 작가는 인위적인 조명을 사용하여 빛과 어둠을 강렬하게 대비시킨다. “비밀 연소 Secret Burning”, “트럭 Truck” 등의 작품은 비밀스런 집회를 먼발치에서 목도하는 자의 심경을 대변하듯 생경하면서도 연극적인 장면을 연출하고 있다.


또 하나 눈에 띄는 점은 “사물들” 자체에 대한 직관적인 관심이다. 안경수는 최근에 비야 셀민스(Vija Celmins, 1938~)의 유명한 난로 그림(Heater, 1964)에 대한 오마주처럼 보이는 동명의 작품을 완성하였다. 작가는 얼마 전부터 일상생활에서 고정된 위치를 차지하는 확성기, 전등과 같은 물건을 그리기 시작하였고 을지로 상업화랑의 전시에서 일부 선보인 바 있다. 평범한 사물을 눈에 보이는 그대로 그린 이 작품들은 포토리얼리즘적인 극사실 페인팅으로 해석하기 보다는 사물 자체가 가진 질감과 표면에 대한 기록이자 작가 고유의 해석 또는 번역으로 보는 것이 적절할 것이다. 실제 사물뿐만 아니라 사진을 레퍼런스로 하여 물결이 흘러가는 모습, 눈이 오는 장면, 가로등 불빛아래 모여든 나방의 무리와 같은 모습을 그리기도 하는데 이때에도 빛과 어두움의 작용을 매우 영리한 방식으로 이용한 것을 볼 수 있다.


피비갤러리는 <요란한 밤 A Loud Night> 전시를 통해 안경수 회화의 새로운 지점을 자세히 들여다 보고 있다. 전작들에서 ‘막과 풍경’ 사이를 떠돌며 부유하던 시선들은 좀 더 묵직하게 심도를 더해가고 있으며, 화면을 온통 뒤덮었던 붓질들은 견고한 레이어를 이루어 가고 있다. 여러 겹 쌓아 올려진 아크릴 물감은 오일페인팅에서 가능할 법한 밀도를 보여주지만 그 표면은 층을 가늠하기 힘들 만큼 얇고 매끈하여 투명하기조차 하다. ‘밤’의 시간을 비집고 들어오는 빛과 조명은 사물을 ‘요란하게’ 드러내지만 그 장면은 마치 완벽하게 짜여진 영화의 한 장면에서 음향이 소거된 것 같은 부조리한 감각을 준다. 이처럼 안경수의 회화는 이전에 보여주었던 모호함 보다는 새로운 페인팅으로 우리가 바라보는 풍경과 사물, 그 표면을 보는 것에서 벗어나서, 보이지 않는 것, 사물의 너머, 사물과 존재의 관계에 대한 사유로 이행하기를 요청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