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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경수의 드로잉에 관하여

강홍구 [작가]

여러 사람의 작업을 짧은 시간에 보고 그 중에 하나를 고른다는 것은 순간적 판단에
의존하게 된다.
안경수의 작업의 경우에는 그의 작은 드로잉들이었다. 작가에 따르면 그 드로잉들은 독일에서 벼룩시장에서 구입한 물건들을 프로타쥬 기법으로 떠내고 조합해서 만들어진 작품이다. 그 드로잉들은 사물의 존재감은 희미하지만 기법과 태도의 일관성이 눈에 띄었다.

안경수의 드로잉은 어떤 점에서 드로잉이 아니다. 단색조의 묘사여서 색채가 빠져 있기 때문에 드로잉으로 보일 뿐이다. 드로잉에는 대개 작가의 맨 얼굴이 드러나게 되는데 안경수는 그것을 감춘다. 사실 감춘다기 보다는 애초에 드러낼 생각이 없었거나 그가 그리는 사물들로 그것을 대체한다. 비교적 가장 자신이 잘 드러나는 독일에서 시작했다는 작은 드로잉들을 보아도 그렇다.

그 드로잉들은 사물들이 프로타쥬 된 상태, 즉 표면을 보여주고 있을 뿐이다. 다른 작업들도 크게 다르지 않다. 선을 쓰는 방식에서도 그렇다. 그는 드로잉의 선을 먹지를 대고 그린다. 먹지를 대고 그린 선은 복사되거나 인쇄된 듯이 보이면서도 손으로 그린 기분이 살아있다. 즉 이중적이다. 이러한 방식은 앤디 워홀의 일러스트레이션에 쓰였던 블롯blot 기법- 매끄러운 종이 위에 잉크로 드로잉을 한 다음 흡수성이 높은 종이로 찍어내어 채색하는-과 비슷하다. 자신의 손으로 그렸으되 마치 그리지 않은 것처럼 보이게 하려는 시도이다.
이러한 시도의 배후에 무엇이 있을까. 그것은 아마도 사물, 세계와 작가 개인 사이에 있는 중립적인 곳에 작품을 위치시키려는 의도일지도 모른다. 즉 자신이 드러나지 않게 감추되 지워지지는 않는 위치. 그리고 그러한 태도들은 안경수만이 아니라 최근의 젊은 작가들에게서 자주 보인다. 드로잉, 회화, 설치에 이르기까지 얼른 보기에 완성도가 높고, 미술의 문법을 잘 터득하고 있어서 작가가 자신을 드러낸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한발 뒤로 빼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그 중에서도 드로잉들은 다소 과도한 묘사와 정밀한 완성도, 그리고 화면을 가득 채우는 것이 특징으로 보인다.

안경수의 드로잉이 흥미로운 점은 작가가 자신을 사물에 투사하려는 태도와 그려진 대상, 사물이 표면 밖으로 나와 존재감을 주장하려는 사이의 긴장감에 있다. 혹은 작가가 사물들을 자신을 대신해 표면 밖으로 애써 밀어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아무튼 그 긴장감이 멈추지 말고 계속 되기를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