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1 안경수 / 속이 텅 빈 자연

Hollow nature

안경수 전 | 2010. 12. 9 – 2011. 1. 6. 갤러리 비원


이선영 [미술평론가]


안경수의 'artificial island'는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장식적 조경을 소재로 한다. 정교하게 모사된 풍경 내부에는 배수구나 지지대, 연결관 등이 숨은 그림 찾기처럼 배치되어 있다. 이러한 인공자연은 언뜻 그럴듯한 외관에도 불구하고 두들기면 텅텅 거리는 소리가 날 듯하며, 좀 세게라도 치면 금 새 안과 겉이 다른 얇은 파편들로 분리되며 자신의 취약한 본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자연적 리얼리티는 인공적 하이퍼 리얼리티로 대치되었지만, 조잡한 이음매들을 감추지는 못한다.

지하철이나 대형 음식점 등의 자투리 공간에, 호롱박이나 물레방아 같은 소품과 어울려 배치되는 이러한 아기자기한 인공자연은, 충무로역의 인공 동굴 인테리어나 공원의 인공폭포처럼 환경적인 스케일로 확대되기도 한다. 자연을 밀어내고 그 위에 지어진 도시들은 사라진 자연을 향수적으로 복귀시키는데, 이렇게 복귀된 자연은 다분히 인간의 한정된 상상력이나 기술, 경제력에 의해 길들여져 있다. 우리는 거기에서 문명에 찌든 눈을 정화시키는 야생은커녕, 문명의 찌끄래기 같은 추레함만을 보게 될 뿐이다. 모퉁이가 떨어져 나간 바위산, 창백하게 색이 바랜 플라스틱 식물은 주변과의 어떤 상호작용도 멀리한 채 먼지만 푹 뒤집어쓰고 있다. 그것은 전시 부제 그대로 섬이 되어 버린다.

지금 여기에는 없는 것을 재현하는 미술의 통상적인 어법 역시 이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다만 작가는 실제의 풍경과 마주한 정신적 육체적 감응을 최대한 삭제하려 했다. 우선 그림의 대상이 실제 풍경이 아닌데다가, 형식적인 면에서 드로잉을 다시 먹지로 옮기는 방식을 선택함으로서, 실재의 깊이를 핵심이 부재한 표면으로 전치시켰다. 복사하듯 재현된 대상은 가상의 가상성을 극대화한다. [harsh mountain]에서 아래의 빈 공간으로 흘러내리는 물감은 산 풍경을 뿌리 없이 둥 떠 있는 주름진 덩어리로 부각시킨다. [island]에서 산 모형물은 아예 구조물에 들려있는 상태이다.

그 앞에 모여 있는 사람들 역시 안경수의 이전 작품에 나타나는 모형 인간들처럼 거친 이음매를 드러낸다. 그는 빛바랜 자연의 상태를 통해 인간을 되비춘다. 종이 위에 연필로 그린 [waterfall]은 인공폭포에 어울리는 낭만적인 밤풍경인데, 도시에서 결코 볼 수 없는 엄청난 별빛의 쇄도와 천체망원경이 아니면 관찰할 수 없는 달 표면의 얼룩까지, 풍경은 과도한 유토피아적 관점에 의해 각색되어 있다. 관객의 시선은 풍경 저 너머로 빠지지 않고 인공적으로 연출된 표면을 배회한다. 최소의 투자에서 최대의 효과를 낳아야 하는 경제 원리에 의해, 표면에 주어진 역할은 기능의 전부를 차지하게 된다. 조금도 남김없이 모든 것을 표면으로 기어오르게 해야 하는 것이 시뮬라크르 시대의 지상과제인 것이다.

나무 박스 안에 블랙 라이트로 바위산과 야자수, 그리고 달을 비춘 [mountain]은 그 자체에서 빛을 발하는 것이 아니라, 조명을 통해서만 드러나는 인공자연의 면모를 극대화 한다.안경수의 작품 소재는 더 큰 차원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도시조형의 축소모델이라 할 만하다. 도시조형은 공간과 시간의 시각적 소비를 위한 것이다. 샤론 주킨은 [탈현대적 도시조형; 문화와 권력의 지도 그리기]에서 공상적 조형물(dreamscape)로 변해가는 현대 도시의 면모를 분석 한 바 있다. 디즈니 월드로 대변될 수 있는 이러한 도시조형은 자연적인 환경에 부과된 공간적 질서이다. 저자는 공간성이 항상 사회적으로 구성되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즉 공간은 교회, 대지주, 공장, 기업적인 프랜차이즈와 같은 지배적인 사회제도를 중심으로 건축되며, 이러한 시회 제도의 힘에 의해 규정된다.

그것은 오랜 세월동안 삶이 축적된 풍토적 고유성(자연적 지형학과 사회적 지평)이 자본의 지배적 힘이 관철되어 재배열된 것이다. 안경수의 작품은 스펙터클의 시대를 사는 현대인에 내재된 욕망, 즉 자연을 손쉽게 전유하고 소비하려는 욕망이 투사되어 있다. 그가 선택한 일종의 자연 속의 이상향 같은 모습은 세련된 소비를 위한 무대장치로서는 너무나 빈약해 보이지만, 현대적 삶의 전 차원에서 진행되는 자본의 상상적 공학(imagineering)을 대변하고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안경수의 가공적인 산수풍경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을 소비하고, 우리가 소비하는 것을 상상한다’(샤론 주킨)는 점에서, 현대인의 사회 공간적 정체성에 대한 집단적인 표상이다.

출전 | 2010 경기문화재단 시각예술 부문 지원사업 모니터링 보고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