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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een Mountain_안경수展_BRAIN FACTORY_평론

최지예 [MONGIN ART CENTER curator]

안경수는 이번 브레인 팩토리의 개인전에서 초록 장난감더미를 소재로 하는 「Green Hil」, 「노획물」 등의 최신작들과 함께 올해 초의 작업인 「만남의 공원」을 선보이게 된다. 「Green Mountain」을 비롯한 안경수의 신작 시리즈에 일관적으로 보여지는 초록 덩어리는 푸른 이파리로 위장한 그 어떤 것인 냥 명확히 그 정체를 드러내지 않는다. 이는 초현실주의의 대표적인 작가 막스 에른스트(Max Ernst, 1891-1976)가 프로타주(frottage) 기법으로 그린 “자연사”(Histoire Naturelle)의 삽화 중 「부부의 다이아몬드」(1925)에 등장했던 보호색으로 위장한 새를 연상시켰다. 스치듯 지나간 작품을 다시 한번 바라보니 그것은 한참 전투 중인 병정 혹은 전사한 군인들의 시체더미 같았다. 하지만 거꾸로 뒤집힌 병정들에게서 발견된, 그들을 지탱해주고 있는 받침대는 초록색 덩어리들의 실체가 실제 병정이 아닌 장난감병정이라는 것을 눈치챌 수 있게 한다. 「만남의 공원」에서는 중앙의 커다란 목마가 정적으로 보이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작은 장난감병정들은 격렬하게 전투를 하고 있다. 그네와 뺑뺑이, 미끄럼틀 등의 놀이기구들과 화면에 배치된 장난감들은 익숙히 봐온 것이지만 그것의 구성은 물리적, 논리적 법칙을 위반했기에 왠지 낯설다. 이전 작품에서 신작 시리즈로 넘어가는 과도기적인 작품인 「만남의 공원」은 최근작과 긴밀한 연관관계를 가지는 동시에 신작으로 발전하게 되는 과정을 유추할 수 있는 여지를 제공한다. 2001년 첫 개인전 「거울을 보다」 이후 작가는 줄곧 장난감을 비롯한 어린 시절을 상기시키는 주제를 작품에서 다루어왔다. 이번 신작에는 작은 장난감병정 무리가 확대되어 다양한 포즈와 구성으로 그려졌다. 이러한 작업은 어린 시절 작가의 놀이에서 기원한다. 어린 시절을 부산의 변두리 지역에서 보낸 작가는 친구들과 놀기 보다는 혼자서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것에 익숙하였다. 그런 작가에게 다양한 캐릭터에 등장인물이 여럿인 장난감병정은 혼자서도 이야기를 만들어 나갈 수 있는 매우 유용한 놀이도구였다. 작가는 어린 시절의 연장선상에서 여전히 병정놀이를 한다. 그는 그가 포착한 우리들의 삶 속의 어떤 감정들을 비롯하여 개인적으로 느끼고 생각하는 것들을 장난감병정에 알레고리화 한다. 그들의 극적인 상황을 의도적으로 연출하기도 하고 툭툭 던져 우연에 의한 결과로 이야기를 만들기도 한다. 그 행위를 통한 결과물들은 사진으로 촬영되어 사진 속의 이미지는 캔버스로 옮겨진다. 장난감은 어린이들이 가지고 노는 도구로써 어른세계의 축소판이지만 그것이 지닌 부정적 가치들을 교묘히 숨기고 있다. 장난감 총의 강력한 유희적 기능은 실제 어른들의 현실에서 작용되는 이해관계나 폭력성, 잔혹성 등의 의미를 은닉시킨다. 길고 풍성한 금발머리, 커다란 가슴과 잘록한 허리라인, 8등신 몸매의 바비인형이 지닌 성의 상품화 논리 역시 인형이 지닌 유희적 기능으로 인해 쉽게 가리워질 수 있다. 안경수는 이러한 장난감에서 서정적이고 행복했던 어린 시절의 추억을 떠올릴 수 있을 법한 모든 요소를 제거하고 장난감 그 자체만을 확대하여 세부적으로 묘사한다. 이런 방식에 의해 유희성으로 숨겨졌던 의미와 상징들은 서서히 화면 위로 드러나게 된다. 어린 아이들의 즐거운 장난감놀이 속에 감추어져 있던 낯선 풍경을 접하는 순간 보는 이는 당황하게 된다. 「노획물」의 분절된 병정은 실제로는 조립되지 않은 장난감의 부분들이지만, 이것은 전사한 군사들의 신체 일부를 절단하여 취하던 잔혹하고 폭력적인 역사를 연상시킨다. 각각의 부분들이 매뉴얼대로 조립되지 않고 아귀가 맞지 않게 억지로 조립된 괴기스러운 모습의 「만남의 장소」는 「노획물」의 분절된 신체보다 훨씬 공격적이다. 유희를 가장한 장난감놀이는 어느 새 우리 시대의 잔혹한 폭력성을 드러내고 있다. 안경수의 작업은 어린 시절을 상징하는 서정적 장난감을 통해 우리사회의 은폐된 폭력적 현실을 은유적으로 드러내어 보는 이들로 하여금 호기심을 유발하는 동시에 시각적·의식적 불편함을 야기시킨다. 하지만 이런 불편한 풍경은 삶의 이면에 대한 재고를 가능하게 한다. 전쟁에서 사람이 죽고 패자의 신체를 절단하는 등의 잔혹한 폭력성은 비단 전쟁터에서만 자행되는 것은 아니다. 총칼의 직접적 무력은 사라져 우리와 상관없는 듯 보이지만, 여전히 폭력적 긴장감은 곳곳에 도사리고 있다. 보이지 않는 사회경제적 권력의 횡포는 그 익명성으로 인하여 더욱 잔혹하고 원활하게 이루어지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이로 인해 우리가 경험하는 비애감, 상실감, 허무감 등은 지금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노출되어 있는 생고이기도 하다. 그저 장난감의 단순한 유희적인 풍경일 수도 있는 작품을 바라보면서 이 같은 현실의 이면을 떠올리게 되는 순간 이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다시 한번 삶의 비애감을 느끼게 된다.